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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일본에서 본 '낙태' | 일본의 인공임신중절(낙태) 실태

얼마 전, 한 일본인 친구가 말했다.

"남자친구와 어쩌다 아이가 생겨서, 이번에 중절 수술 했어. 아직 준비가 안됐었거든..."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란 마음을 감추며 태연한 척을 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닌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그리고 일본에서 낙태 수술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일본에서 임신 중절 수술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수술인걸까?
알아보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1975년 1월 17일에 인공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되었다.

임신 상태를 지속할 수 없는 신체적 또는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는 경우, 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일본의 인공임신중절 수술은 '모체보호법'을 준수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모체보호법으로 정해진 조건은 아래와 같다.

一 임신을 지속하는 것 혹은 아이를 분만하는 것이 신체적 혹은 경제적 이유에 의해 모체의 건강에 현저한 해를 끼치는 경우
二 폭력 또는 협박에 의해, 또는 저항 또는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간음당해 임신한 경우

이 조건의 동의는, 배우자가 누군지 모를 경우 또는 그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또는 임신 후에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본인의 의사 표명만으로도 충족된다.


이와 같이, 폭력 및 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뿐만 아니라 '신체적 혹은 경제적 이유'에 의해도 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낙태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용은 얼마나 될까?

한 산부인과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니, 임신중절 수술 비용은 다음과 같았다.

일본 모 산부인과의 낙태 시술 비용 


초진비는 무료.
수술비용은 4주~7주는 99,000엔 (약 100만원) , 8주에서 11주는 110,000엔 (약 110만원).

분만 경험이 없는 임산부의 11주 태아의 낙태 비용은 121,000엔(약 120만원)으로 가격이 올라간다. 출산 경험이 없으면 자궁경관이 아직 딱딱한 상태여서 수술 난이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비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만약 임신 4주차 이하라면, 5주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술을 진행한다. 임신 4주 이내에는 자궁경관이 매우 딱딱해서 무리하게 수술을 진행할 경우 경관이 파열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궁이 아직 작은 상태여서, ‘내용물’의 잔존상태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쓰여있다.


병원에서 합법적으로 하는 것이니 보험이 적용될까?

중절수술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수술 비용은 전액 환자 본인 부담이고, 다만 수술 전의 진단이나 처방에는 보험이 적용된다.

그러나 ‘낙태 기록을 남기기 싫은 사람’들은 건강보험증을 내지 않고, 진단, 처방에 드는 돈도 자비로 계산하면 된다. 그럼 임신중절수술 기록이 남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보험증保険証'의 제시는 필수이다. 즉, 건강보험증이 없는 외국인 등은 수술 불가하다.)

이 병원의 안내 글에는, 수술비용에 부담이 가는 이들을 위해 '신용카드 분할납부'도 되니 안심하라고도 적혀있다.


결과적으로,
일본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으려고 할 때 드는 수고는 일반 진료를 받을 때와 비슷하다..
쉽게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의 궁금증.
일본에서 한 해에 몇 번의 임신중절 수술이 진행될까.

2020년에는 15만 6340건의 임신중절수술이 진행되었다.

전체 임신 수 중, 중절의 비율은 15.3%.

임신 중절의 비율이 높은 연령층은 청소년과 고령 여성층이었다.
(14세 이하의 경우 임산부 중 82.3%, 15~19세는 61.7%, 45~49세는 46.8%가 중절 수술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수술건수 자체로 보면 20~39세 사이의 연령층에서 가장 많은 수술이 실시된다.

5년 전 자료이지만, 가임기(15세~49세) 여성 천 명 대비 약 6명 이상의 여성이 낙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2019년, 헌법재판소는 1953년 제정된 이후 66년 동안 유지된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다.
해당 결정은 낙태죄 조항이 위헌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조항을 개정하라는 결정이었지만, 낙태죄 조항에 대한 대체입법이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2021년 1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낙태죄는 사라졌다.

한국의 낙태 실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했으나, 낙태 수술 등이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정확한 통계를 알 수가 없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체 낙태 수술 추정 규모는 4만 9,764건으로, 이중 합법적 수술은 4,113건에 그치고, 낙태 수술의 약 90%가 불법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낙태죄는 사라졌지만, 한국에서 '낙태 수술'을 어디에서,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앞으로도 대다수의 수술이 불법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논점은 다음과 같다.


성폭행 등 범죄로 인한 임신의 경우에는 낙태가 허용된다.
다만,
①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② 임신부의 요청이 있는 경우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아래의 OECD 주요 회원국의 낙태 허용・금지 실태를 살펴보면, EU, 북미권 국가들은 양 쪽 모두를 허용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와 함께 남미 국가들, 이스라엘 등은 양 쪽 모두를 금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는 허용하지만, 임신부 요청에 의한 낙태는 허용하지 않는다.

출처: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1/2019041102653.html



다양한 자료를 비교하며 수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나 또한 이에 대한 생각을 아직 명확하게 정립하지 못했다.
'낙태' 문제에 대해, 과연 어떤 것이 윤리이고, 어떤 길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사회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인지,
더욱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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